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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아내

부활 김태원 암투병 패혈증 아내 이현주 아들 딸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패혈증을 고백한 부활 김태원입니다.

오늘은 김태원 나이를 비롯한 김태원 암투병과 아내 아들 등 가족 정보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2015년 결성 30주년을 맞이한 부활 밴드입니다.

그동안 부활 보컬은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정동하 등이 거쳤고

그 중심에는 김태원이 있었습니다.



올해 4월 부활 보컬로 다시 박완규가 합류하였는데요.

부활은 Never Ending Story, 사랑할수록,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의 히트곡이 있습니다.

박완규 합류와 함께 부활은 싱글 그림을 발매하며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기타를 맡지만 부활의 노래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습니다.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혔던 김태원입니다.

김태원의 뛰어난 역량을 사람들이 모를 때가 많더라구요.






대표적으로 남자의 자격이나 오지의 마법사 등 예능이나

드라마 까메오, CF를 여럿 찍었던 김태원입니다.

그래서 김태원의 예능적 요소만 아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라디오 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던 베테랑입니다.



이번 인생다큐 마이웨이는 30여 년간 꾸준히 음악을 하면서 

각종 예능과 광고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부활'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김태원의 이야기입니다.



김태원은 1965년생으로 현재 나이 만54세입니다.

키는 174cm로 알려져 있으며 장안전문대학 무역학과를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태원 종교는 천주교입니다.



김태원은 3남 2녀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또래들 사이에서 자존감이 낮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는데요.

운송업과 자전거 대여업을 운영하던 재력가인 할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랄 수 있었던 김태원입니다.

하지만 사업실패로 김태원 집안은 어려줘졌습니다.

교복도 물려받게 되며 따돌림을 받기도 했구요.



김태원 중학교 3학년때 같은 반에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인기가 많은 그 친구를 보며 기타를 연습하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접한 '전자 기타'에 빠져들면서 음악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김태원입니다.

LP를 듣고 오직 귀로만 카피해야 했던 시절이었죠.



김태원은 영국의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기타 연주를 따라 했는데, 

이를 들은 사촌 형이 감탄하며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김태원 기타실력 소문도 퍼졌구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습실에서 기타를 연습했던 김태원입니다.

김태원은 1985년 밴드 THE END(디엔드)를 결성하게 하였고 김종서를 영입합니다.

그 뒤 부활로 개명하였죠.



김태원은 록 밴드 '부활'을 결성해 '희야', '네버엔딩 스토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뮤지션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음악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특유의 화법으로 예능감을 드러내며 

대중에게 '국민 할매'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김태원의 음악적 욕심과 완벽주의는 그동안 많은 부활 보컬 멤버들이 증언하였는데요.

김태원은 1993년 아내 이현주 씨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았습니다.

김태원이 결혼하기 전 이승철 탈퇴로 힘들 때 얘기인데요.

돈이 없어 아내가 학원 영어, 수학강사를 하며 하루 1천원씩 줬다고 하죠.



가수와 방송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은 김태원이지만 

인생에서만큼은 우여곡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온 김태원인데요.

애착장애가 있는 자폐증 아들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김태원 아들은 2살에 자폐성 발달장애 2급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년간 노력한 결과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아침 방송에서 김태원 아들 이야기가 방송된 적이 있었는데요.

전 그때 김태원을 다시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사람이 좋다에 출연했을 때도 김태원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습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에 대해 3년이 될 때까지 믿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아내 이현주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김태원 부인 이현주 씨와 아들은 필리핀 유학을 가기도 했구요.

딸은 미국 유학을 가기도 했습니다.

김태원은 기러기 아빠가 되어 방송활동을 하였습니다.

정말 인간적이더라구요.



김태원 딸 김서현은 2013년 1월 데뷔하기도 했는데요.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며 본인이 작사 및 작곡한 곡을 낸 것입니다.

김태원 아들이 자폐로 인해 케어를 받으면서 딸이 소외되었습니다.

우울증을 겪었었다네요.

김태원은 딸이 기타를 잘 치는지 음악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고 하는데요.



딸 김서현 양은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작곡과 작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 이상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있기도 했던 김태원입니다.

2011년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 암 특집을 위해 위암 검사를 받았다가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활 정규 콘서트에 임하는 프로의식을 보여주었구요.



김태원은 위암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며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2016년 한 번 겪은 패혈증이 재발해 4개월 동안 죽느냐 사느냐 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김태원은 패혈증으로 후각까지 잃을 뻔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도 끊게 되었습니다.

김태원은 평소 애주가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패혈증이란 세균 기타 미생물에 감염되어 독소 중독으로 염증과 합병증이 생기는 무서운병입니다.

사망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감기가 낫지 않는 거로 생각하고 일주일간 집에 누워 있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매니저의 의해 실려갔었다네요.



패혈증은 균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장기를 무너뜨리는 것인데, 

김태원이 일주일간 안이하게 둬서 균이 퍼졌었다네요.

의사가 가족들에게 모이라고 하였고 신부님이 옆에서 기도를 시작하며 여동생이 울 때 김태원은 삶이 끝났다는 생각도 했었다네요.

회복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김태원은 한국연예예술학교 초대 학장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김태원은 2011년 에세이집 우연에서 기적으로를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인생다큐 마이웨이 김태원 편 예고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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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1986년 1집 Rock Will Never Die를 발매하였습니다.
약 30만장 이상을 판매했다고 알려져있으며 LP 한정판으로도 출시되었습니다.
김태원은 녹음 과정을 상당히 까다롭게 진행하며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박완규의 재기를 돕기도 했구요.
정말 따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김태원과 아내 이현주는 1살 차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활의 명곡 네버엔딩스토리는 아내와 딸이 캐나다로 떠났을 때인데요.

김태원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진 노래입니다.

아까 필리핀을 언급하였는데 캐나다로 떠났다가 한국에 돌아왔다가 필리핀으로 간 것입니다.

김태원도 대단하지만 아내가 정말 대단하죠.

자폐아 아들이 필리핀에서 적응할 수 있게 하였고 수영, 드럼, 미술 등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부활 멤버들이 탈퇴하면 초창기에는 굉장히 괘씸하였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탈퇴하더라도 미워하지 않고 늘 걱정하게 된다고 하네요.

마지막 콘서트 노래는 김태원이 아내 이현주 씨를 모티프로 쓴 곡이라고 하네요

김태원 가족 정말 멋있습니다.




아내 이현주 씨는 장애 아돌 가족을 위해 힐링캠프를 여는 등 좋은일도 많이 하더라구요.



예전에 별거가 별거냐 방송을 통해 김태원 필리핀 집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휴양지 고급 리조트 같은 집에 테라스도 멋있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천장도 높아서 더 좋아보이더라구요.




한편, 부활은 12월 연말 콘서트를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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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췌장암

유상철 췌장암 4기 공식입장



인천 유나이티드 유상철 감독은 저번달 황달 증세와 함께 정밀 검진을 받았습니다.

당시도 실시간 검색어에 유상철 감독이 오르며 화제였는데요.

유상철 감독 건강 악화와 이에 따른 감독직 수행 여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습니다.

유상철 병명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였죠.


그리고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췌장암은 정말 치료가 힘든 암인데 걱정이네요.







유상철 건강 이상설이 나돌았고, 

구단은 공식 채널을 통해 황달 증세로 인해 입원 소식을 전했었구요.

지난 24일 퇴원 후 유상철은 팀에 복귀해 27일 수원 삼성전을 지휘하였습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유상철은 컨디션이 좋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구단은 당연히 휴식을 권했구요.

그리고 11월 19일 유상철 감독 공식입장이 나왔습니다.


  


아래는 11월 19일 인천 공식 채널을 통해 나온 유상철 췌장암 공식입장 중 일부 입니다.

유상철 췌장암 소식은 너무 충격입니다.





인천유나이티드 감독 유상철입니다.


...


저는 지난 10월 중순경 몸에 황달 증상이 나타나는 등 이상 징후가 발생하였고,

곧바로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검사 결과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저에게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저 때문에 선수들과 팀에게 피해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제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함과 동시에 우리 선수들, 

스태프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어울리며 저 자신도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다는 유상철 감독입니다.

인사 끝에는 유상철은 팬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빌었는데요.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유상철 편지를 읽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네요.

이게 정말 스포츠정신인가봅니다.


유상철 열정 너무 대단합니다.

유상철 덕분에 많은 분들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상철은 사실 예전에 왼쪽 눈이 거의 안보인다고 실명 고백을 한 적도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 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유상철인데요.


유상철은 1971년생으로 축구선수출신 감독입니다.

현재 유상철 나이 48세입니다.

2019년부터 인천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고있죠.




인천유나이티드 계약기간은 1년 6개월입니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만 124경기에 나서 18골을 기록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 유상철입니다.

1990년 청소년 대표에 발탁되었습니다.


국가대표 단골로 활약하며 한일전에서 특히 강했던 유상철 선수입니다.

프로 무대에서는 울산 현대를 비롯해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습니다.


 


유상철은 한일월드컵 당시 

이번 월드컵에 참여한 수비형 미드필더 중 최고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유상철은 경신중, 경신고, 건국대학교를 나왔습니다.

1997년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두고 있습니다.






    


유상철은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구요.

2011년 K리그2 대전 시티즌에서 2년간 있었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울산대학교에서 준우승을 이끌었었죠.

전남 드래곤즈를 맡기도 했었지만 감독직을 사퇴하였습니다.


   


전남에서는 사실 추억이 좋지 않은데요.

유상철은 과도한 실험과 시도를 하는 스타일이기도 했었거든요.


지난번 인천 유나이티드 승리에 유상철 감독을 비롯해 

모든 인천 선수들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는데 정말 감독이었어요.


유상철 건강 소식은 선수들이 경기를 끝내고 전해졌었다고 하죠.

아무쪼록 유상철 감독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원일기 복길이 엄마로 출연했던 김혜정 배우가 유상철 이모라고 하죠.

유상철 아버지도 영화배우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상철은 날아라 슛돌이 감독으로 출연하여 이강인을 발굴해냈는데요.

이강인에게 개인과외도 해주고 아카데미에 입단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상철은 이강인은 어렸을 때부터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며 자기가 잘 큰 것이라며 겸손했죠.


연관검색어에는 유상철 건강, 유상철 황달, 유상철 건강이상, 유상철 간 등 많았는데요.




유상철 췌장암 소식과 함께 췌장암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요.

많은 분들이 걸리는 췌장암은 원인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자암이라고도 하죠.




췌장암의 대부분은 췌액을 운반하는 췌관에서 발생하는데요.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되는 3, 4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췌장암입니다.

췌장암 조기발견이 어렵기도 하구요.

췌장암 증상으로는 황달이나 등 쪽 통증입니다.

유상철 감독의 얼굴을 네티즌들이 잘 캐치하긴 했네요.




  


복부 초음파 CT라든가 MRI, 조직검사 등으로 췌장암을 판단하게 됩니다.

우선 항암치료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금연, 금주, 건강검진이 필수입니다.



 



췌장암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수술이며, 과거에 비해 

췌장암 치료법의 발전으로 치료 후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유상철 감독의 쾌차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유상철 감독 응원하겠습니다.

유상철 건강하게 돌아와주세요.



1998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베스트11,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 올스타, 

2013 K리그 30주년 기념 베스트11에 선정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유상철입니다.



췌장암 4기라고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유상철 검색이 오르내리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통증이 심한 경우는 방사선치료를 병행하게 됩니다.

그동안 유상철 감독이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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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췌장암 투병중이라는 설이 나오긴 했었는데요.

2002년의 그 기적처럼 유상철 감독의 인생에 또 한번의 기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유상철 파이팅입니다.


췌장암 4기 암은 수술이 불가능하여 담췌관이 막히지 않게 

스탠트 시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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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은퇴

이세돌 은퇴



이세돌 9단 은퇴 소식 전해드립니다.

이세돌 9단은 19일 한국기원에 프로기사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2016년 이세돌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정말 대단했었죠.

이세돌vs알파고라 불리는 바둑 경기는 실검에도 오르며 많은 관심을 얻었습니다.

약 일주일간의 경기동안 이세돌은 1승 4패를 기록했었는데요.

공식전에서 알파고에게 1승을 거둔 최초이자 최후의 바둑기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이세돌입니다.



이세돌은 신안 출신입니다.

1983년생으로 현재 나이 만36세입니다.

1995년 입단하여 프로 9단에 올랐는데요.

2006년 결혼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여섯 살에 바둑을 시작했던 이세돌입니다.






이세돌은 이미 한국기원 기사회에 탈퇴서를 냈구요.

프로기사 사직서도 제출하면서 활동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기원 주최 각종 기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되는 이세돌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무대 활동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최근 이세돌은 성적이 좋지 않았거든요.


   


이세돌은 독특한 착상과 전투적 기질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습니다.

가감없는 자기주장과 일인자로서의 자존심 정말 멋있었죠.

인간이 기록한 1승의 주인공 이세돌인데 사실, 올해 초 은퇴를 언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세돌 라이벌이자 중국 최고수인 커제와의 경기가 있었었죠.


  





이세돌은 완벽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휴직이나 은퇴 중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후배기사들에게 앞으로 이기기 힘들겠다고 생각도 했었다네요.

이세돌이 은퇴를 한다면 방송계 진출도 했으면 좋겠네요.

혹시 모르죠 뭉쳐야 찬다같은 예능에 나오게 될지...



이세돌은 갑작스런 결심이 아니라 오랫동안 은퇴를 생각해왔다는 것 같아요.

계속 아쉬움이 남아 바둑을 하게 된 것이죠.

프로 3단 시절인 1999년에는 한국기원의 승단대회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던 이세돌입니다.

결국 굴복한 한국기원이 2003년부터 우승 기록이나 대국 전적을 승단심사에 반영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었었죠.


   


이세돌은 2009년에는 국내 최대의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기원이 랭킹 10위까지는 반드시 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기도 했죠.

참고로 이세돌 별명으로는 쎈돌이 있으며 고문 변호사는 손수호 변호사입니다.

조훈현, 이창호에 이은 세계 바둑 최강의 계보를 이어가는 바둑기사인 이세돌입니다.


    



이세돌은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3위의 기록을 가지기도 했었구요.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이창호 다음으로 많습니다.

이세돌은 형인 이상훈을 따라 입단했고 형은 이세돌의 능력을 보고 바로 은퇴를 하여 지원을 하고 있죠.

이세돌은 복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물도 안 마시고 상대방과 복기를 한다고 하죠.



이세돌은 프로기사들의 모임인 기사회를 상대로 그동안 공제해 간 상금의 일부(3~5%)를 돌려달라며 법적 소송에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2016년에는 기사회에 탈퇴서를 내기도 했었구요.

승부욕이 강한데 최근 랭킹이 10위권 밖으로 떨어졌는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이세돌 은퇴 소식은 놀랍습니다.



2000년에 32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었던 이세돌입니다.

이세돌은 판을 엎어라 등 책을 저술하기도 했었구요.

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첫걸음이라는 입문서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2019년 2월에 김광식 프로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한 이세돌입니다.




최근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는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 기보가 등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 소비한 전기량이 정말 엄청났다고 하죠.

이세돌 정말 대단합니다.



     


공익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에도 출연하기도 했던 이세돌인데요.

많은 광고 제의를 받았으나 농심의 광고와 공익광고에만 응했다고 하네요.

농심만 응한 이유는 자신이 농심 신라면배에서 자주 우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세돌이 그 동안 받은 상금액이 약 70~80억원 정도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세돌의 아내와 초등학생인 딸은 2008년부터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정상급 기사 중 담배를 피우는 유일한 기사였는데 딸이 싫어해서 금연을 했었다고 하는데 주량도 세다고 합니다.

5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세돌인데 집안 자체가 다 바둑에 소질이 있다고 하죠.

앞서 언급한 형 이상훈이 프로입단도 했었구요.



 


이세돌 목소리가 매우 특이한데요.

입단 후 열네 살 때 스트레스가 심해 실어증이 왔는데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그렇다고 합니다.

기관지 신경이 마비되어서 그런 거라죠.

은퇴 후에 해설가로는 활동하지 않을 것 같아요.



1999년 3단으로 승단한 뒤 열일곱 살이던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의 우승컵을 손에 쥐었고

2002년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대회 우승컵을 통해 마침내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았던 열아홉살 이세돌인데요.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





이세돌의 사직서는 사무총장과 총재의 결재를 거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푸터바